언젠간 이 내용에 대해서 한번 정리를 하려고 했는데 이제서야 시간이 나서 글을 써보려고 한다.
우선 길이 글어질지도 모르나 최대한 내 인생 이야기를 적어보려고 한다.
2016년 2월(수능 끝)
수능에서 안 좋은 점수를 받으며 넣었던 모든 대학에 떨어졌었던 시기다.
공부를 안 했냐? 사실 공부머리가 없고 집중력도 굉장히 안 좋은 편이었다.(지금이야 집중력은 많이 달라졌지만...)
1년간 아버지의 권유로 집에서 독학 재수를 시작했었다.
당시에 집안 사정도 좋은 편이 아니라 독학 재수가 최선이었고, 나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좀 더 열심히 하지 그랬니)
결과는 같았다.
결국 집 근처 전문 대학교인 인천재능대학교 전자공학과에 정시로 입학했다.
2017년 3월(대학교 1학년 1학기)
부천대학교, 인하공전도 넣었지만 전부 떨어지고 그나마 붙었던 학교였는데 솔직히 부모님에게 굉장히 죄송스러웠다.
부모님은 그래도 "전자공학과라 취업 잘될 거야~", "아빠가 알아봤는데 여기 학교 되게 괜찮더라고?" 이런 말씀을 해주셨었다.
이때부터 나는 마음가짐이 많이 달라졌다.
주어진 환경에서 최대한 열심히, 빠른 취업을 해서 부모님에게 손 벌리지 않는 아들이 되고 싶었다.
2017년 8월(대학교 1학년 2학기)
과에서 8등을 하면서 처음으로 장학금을 받았었다.
대학교에 입학했던 이후 새벽까지 공부하면서 내 인생을 바꾸려고 노력했다. 그 결과가 이렇게 나오니깐 나도 너무 뿌듯했고, 특히 부모님도 너무 기뻐하셨던 게 기억이 난다.
어떻게 보면 같은 전문대에서, 나랑 같이 열심히 하는 애들은 다 똑같은 마음이지 않을까 싶다.
다들 원하지 않은 대학에 들어와서, 어떻게든 최고의 성적을 내서 신분세탁을 하려는 것.
나도 굉장히 목이 말라있던 상태였고 넓은 도서관에 공부하는 소수의 인원들을 보면 더더욱 불타올랐었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과에서 2등? 3등?을 했던 걸로 기억한다.
솔직히 1등을 못했다는 아쉬움이 굉장히 컸지만, 그래도 새벽까지 공부하고 교수님을 귀찮게 했던 게 이렇게 돌아오는 걸 보니 노력하면 된다는 걸 여기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이후 논산훈련소로 입대했다.
군대 -> 2020년 2월(대학교 2학년 1학기)
군대에서 전역하고 나는 중요한 선택을 했어야 했다.
1. 단순하게 수업을 들으며 취업을 준비한다.
2. 일학습병행제를 통해 기업에 다니면서 수업을 병행한다.
나는 처음부터 목적은 단 하나였다. 전문대에 온 이상 빠르게 취업해서 부모님에게 손 벌리는 일을 멈추고, 내가 용돈을 주는 아들이 되고 싶었다.
고민도 하지 않고 2번을 선택했고, 반도체 장비 업체인 '유니셈'에 일학습병행제로 1년간 다니게 되었다.(덤으로 장학금도 무료였기에 최고의 선택이었다)
유니셈에 들어와서 다른 친구들은 전부 장비 제조 파트에 붙게 되었고 나 혼자만 품질관리에 들어가게 되었다.
혼자 떨어져서 굉장히 어색함도 많았고 싫었지만 진짜 최고의 파트였다.(직원들은 아니었지만)
내가 맡았던 일은 몇 개 없었다.
1. 장비가 들어오면 O2, N, 전기 연결 등 초반 셋팅
2. 문서 들고 다니면서 직원 형들이 부탁했던 체크리스트 확인
3. 대리님이 주시는 문서 정리
4. 쓰레기 정리
이걸 아침 9시에 와서 4시 30분 정도까지 진행했는데, 중간에 학생들은 터치 안 하고 그냥 쉬게 냅뒀다.(나중에 들어보니 품질 쪽만 대리님과 형들이 잘 대해줬고, 제조 파트는 몸을 쓰는 파트라 많이 힘들었다고 한다)
2020년 8월(대학교 2학년 2학기)
1학기 다니면서 사실 유니셈 품질보증팀에 지원하려고 했었다.
그래서 같이 일하는 직원 형들한테 연봉도 여쭤보고 입사 추천하냐고 여쭤봤던 결과...
나는 그 이후부터 내 미래에 대해 진득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그 결과 부모님에게 통보식으로 편입에 도전하겠다고 말씀드렸다.
그 이유는 단 하나였다.
후회하지 말자
대학교를 전문대 타이틀로 산다는 것은 꽤나 치명적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연봉테이블도 다르고, 업무도 다르고, 커리어에 제약이 생길 것이라 판단했다.
부모님에게 당당하게 말씀드렸고, 부모님도 내 의견을 존중해 주셔서 나는 토익을 준비하면서 편입에 도전하게 되었다.
시간도 많이 부족했던 편이고, 학점은 학점대로 챙겨야 해서 영어만 보는 국립대를 노렸다.(편입 수학, 편입 영어를 도전하기에 시간이 너무너무 부족했다)
내가 같이 일하던 동생에게도 욕심이 있으면 같이 편입 준비를 하자고 설득했지만 그 동생은 결국 유니셈 CS로 입사했다.(지금은 그만두고 편입해서 나와 비슷한 길을 걸으려고 한다)
유니셈에 입사하지 않은 이유도 명확했다.
무조건 CS로 연계를 시켜줬는데, 인터넷을 많이 알아보고 대리님, 직원 형들한테도 여쭤본 결과
돈은 꽤 받지만 몸이 엄청 고생하고, 특히 내가 배운 반도체 지식들을 사용하지 못한다는 것이 굉장히 큰 문제였다.
또한 커리어도 꼬여버릴 수 있으니 신중하게 결정하라고 조언을 해주셨다.(너무 감사했습니다)
나는 그렇게 편입을 준비하면서 인천대(탈락), 충남대(탈락), 부경대(탈락)을 마시며 한밭대에 최종 합격했다.
2021년 3월(대학교 3학년 1학기)
편입 이후 적응하기 많이 어려웠던 시기였다.
전문대에서 4.47로 졸업을 했고, 공부했던 만큼 결과가 나와서 어느 정도의 자신감은 있었지만
수학과 물리를 놓았다는 점. 커리큘럼이 많이 달랐던 점. 이게 굉장히 치명적으로 다가왔다.
특히 놓았던 수학을 다시 잡았을 때 느낌은 면허를 따자마자 첫 차로 람보르기니를 몰라고 하는 느낌이었다.
새벽까지 미친 듯이 공부했지만 C+이라는 학점을 인생 처음 받아봤다. 그 외에도 B 밭이었다.
나는 이때 인생의 현타가 엄청 심했었다. 전문대와 커리큘럼이 많이 달랐는데 어떻게 따라잡아야 할지,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할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교수님 2분께 연락드려서 진로상담도 진행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결국 네가 이겨내야 한다는 말씀이었다.
맞다.
이건 내가 이겨내야 하는 부분이다. 여기에서 겁먹고 좌절하면 도전이 왜 있겠는가?
2021년 8월(대학교 3학년 2학기)
개강 이후에 현타가 가장 많이 왔던 시기였다.
나는 내가 반도체에 관심이 있고 재밌어하는 줄 알았다.
근데 그건 큰 착각이었나 보다. 도저히 공부 내용은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휴학을 진지하게 생각하고 부모님께도 솔직하게 말씀드렸다. 그리고 가장 믿었던 교수님 2분께 휴학에 대해 상담을 진행했다.
돌아오는 답변은 똑같다.
"버텨라, 휴학해서 부족한 걸 채워오면 좋지만 그 사이에 동기들은 앞서나간다"
나는 다시 마음을 잡기 시작했다. 새벽까지 모르는 내용을 공부하고 또 공부하면서 어떻게든 되겠지 하면서 버텼다.
2022년 3월(대학교 4학년 1학기)
졸업 작품을 진행해야 하는 시즌이었다.
우리 팀은 라즈베리파이를 이용해서 반려동물을 감지하고 레이저로 놀아주면서 먹이까지 지급하는 프로젝트를 구상했다.
나는 그중에서 라즈베리파이 통해 반려동물을 감지하는 파트를 맡게 되었다.
이때부터였나? 소프트웨어를 다루는 게 굉장히 흥미있고 재밌었다.
안 풀리는 문제들이 수두룩했고, 팀원들과 매일 밤까지 에러를 해결하기 위해 골머리를 앓았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만큼 푹 빠져서 진행했다고 생각한다.
나는 점점 반도체에 흥미를 잃어가기 시작하고 있었다.
2022년 11월(대학교 4학년 2학기)
성공적으로 졸업 작품을 마무리 짓고 4~5번의 수상을 했다.(대부분이 장려였지만)
지원했던 반도체 기업은 전부 탈락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같이 졸업작품을 진행했던 동기가 싸피를 준비한다는 말을 나한테 했었다.(이때가 내 인생의 전환점이었다)
처음에는 그저 웃으며 넘겼지만, 반도체 기업도 전부 떨어지고 반도체에 흥미를 잃어가던 나였기에 싸피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을 해보기 시작했다.
심지어 나는 하드웨어보다는 소프트웨어가 더 재밌고 시간 가는 줄 모른다고 느꼈기에..
남은 시간이 1주일도 안됐기에 급하게 준비를 시작했다.
결과는 합격.
부모님에게 비밀로 한 상태로 몰래 준비했던 과정이라 합격이 뜨자마자 부모님께 소식을 알렸다.
엄마는 너가 하고 싶어 한다니 일단 아빠한테도 연락해 보라고 하셨다.
나도 약간은 긴장하면서 아빠한테 전화를 걸었다.
아빠는 소식을 듣고 처음에는 의심과 걱정으로 시작했다. 약 3~4분가량의 대화 끝에 일단 아들이 결단을 내렸다고 하니깐 꼬리를 결국 내려주셨다.
그렇게 나는 4년간 함께했던 반도체와 이별하고 소프트웨어 개발자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싸피 1년의 생활
4년이라는 시간을 버리고 진로를 바꾼 만큼 내 시간을 헛되게 쓰고 싶지 않았다.
또한 부모님께 해낼 수 있다는 걸 증명하고 싶었다. 간절했다.
1학기에 수많은 술 약속, 게임, 온갖 유혹 등을 뿌리치며 오로지 공부에만 집중했다.
27살이 젊다면 젊지만 나는 진로를 새로 바꿨기에 많이 늦었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내 인생에서 중요한 시점에 놀 시간이 없었다. 또한 꼭 해내야 한다는 게 내 성격이었으니깐.
그렇게 처음 배운 Java로 역량 테스트 A형을 취득, 1학기 관통 프로젝트 최우수를 수상했다.
수상에 멈추지 않았다.
방학 동안 최대한 계획을 세워서 2학기에 비전공자로 백엔드를 잡기 위해 매일 카페에 가서 개발 공부를 진행했다.(JPA, 스프링부트)
그 결과 첫 공통에서 운 좋게 백엔드 포지션으로 시작할 수 있었다.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선배들한테 듣기를 첫 포지션이 쭉 간다는 말을 많이 들었기에 초반에 틀을 잡아야만 했다.
정말 좋은 팀원들을 만나 다양한 프로그래밍 기술과 개념을 배울 수 있었다.
...
이렇게 나는 개발자의 길을 걷고 있다.
지금도 새로운 기술을 배우고, 적용하는 점이 되게 흥미롭고 재밌게 느껴진다.
예전에는 공부가 싫었지만, 재수 이후로 집중력이 굉장히 많이 상승했다.
이런 집중력은 개발자로 진로를 변경하면서 나에게는 최고의 선물이 됐다. 어쩌면 필요했던 과정이라고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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